남파랑길(남해 구간)



남파랑길은 우리나라의 동서남북을 잇는 코리아 둘레길의 남해안 구간이다. 부산 오륙도에서 시작해 해남의 땅끝 마을까지 연결된 총 90개 구간의 1,470km의 걷기 여행길이다.
아래 세 가지의 테마로 남파랑길 남해 구간을 즐겨보자.
땀과 눈물을 느낄 수 있는 첫 번째 테마: 다랭이 마을과 원천항.
위로가 되는 두 번째 테마: 보리암, 편백휴양림, 죽방렴, 그리고 섬 속의 섬을 품은 장포항.
이순신의 마지막 길을 포함한 세 번째 테마: 관음포와 노량해협.

남파랑길(남해 구간) 대표사진

남파랑길(남해 구간)

남파랑길(남해 구간) 정보

📌주소 : 정보 없음


🌍홈페이지 : 정보 없음


😀안내 : 정보 없음


🏁소요거리 : 49.6km


😎일정 : 3박이상


🕗소요시간 : 3박이상


🌎여행테마 : 자연여행


남파랑길(남해 구간) 여행코스 안내

코스1 : 가천 다랭이마을

가천 다랭이마을_1

남해의 가천 다랭이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지만 배 한척 없는 마을이다. 마을이 해안절벽을 끼고 있는 탓이다. 방파제는 고사하고 선착장 하나도 만들 수 없다보니 마을주민들은 척박한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한 층 한 층 석축을 쌓아 만든 다랭이 논(명승 제15호)은 그렇게 태어났다. 가천다랭이마을 체험은 남해인의 억척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다랭이 논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들쭉날쭉 제 멋대로 생긴 논들이지만 그 사이사이로 산뜻한 산책로와 전망대가 마련돼 있어 편안히 돌아볼 수 있다. 다랭이의 명물인 암수바위(경남민속자료 제13호)와 밥무덤, 구름다리, 몽돌해변 등을 돌아보는 데 1시간 남짓 시간이 소요된다. 마을을 돌아보는 동안 안내를 맡은 마을주민에게서 마을 유래에 얽힌 재미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다., 지방어항으로 지정된 원천항은 남해군 대표 관광지인 금산 자락 아래 위치한 항구이다. 남해바래길 본선 10코스 앵강다숲길의 시작점으로 길 항내 원천 방파제는 유명한 낚시 포인트 중 하나이다. 파도치는 소리가 앵무새 소리와 닮았다고 하여 ”앵강만”이라고 불리는 만곡진 바다를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항구이다. 주변 명소로는 남해 가천 다랭이 논과 금산 보리암 등이 있으며 항구에는 횟집과 멸치쌈밥을 맛볼 수 있는 맛집이 두루 있다., 소금강 또는 남해금강이라 불리는 삼남 제일의 명산. 금산(704m)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온통 기암괴석들로 뒤덮인 38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신라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를 짓고 보광산이라 불러왔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 이 산에서 백일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되자 영세불망의 영산이라 하여 온 산을 비단으로 두른다는 뜻으로 금산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정상에는 강화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이 있으며, 불타오르는 여명이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는 금산의 일출은 3년동안 덕을 쌓아 볼수 있다하며 그 장엄함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가져다 준다.

[출처 : 남해 문화관광],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은 이름 그대로 남해바다 인근 한려해상국립공원 북단에 위치하며, 편백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멀리있는 벗을 찾아가듯 넉넉한 마음으로 차를 몰아 남쪽으로 내려가면 남해와 육지를 연결하는 남해대교에 다다른다. 남해대교를 건너 19번 국도를 계속 타고 가다가 남해읍 이동면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2.5km 정도 가면 삼동주유소 앞 삼거리. 여기에서 우회전해 4km달리면 봉화삼거리가 나오고 “”남해편백자연휴양림” 이정표를 따라 7km 더 가면 휴양림에 도착하게 된다.

지난 1998년 개장한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의 면적은 227만㎡, 1일 수용인원은 최대 1,000명, 최적 400명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 북쪽 해발 681m 의 금산 동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산림욕과 함께 남해바다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휴양림 입구를 지나 편백나무 숲 속에서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전망대에 이르는데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크고 작은 섬들과 금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전망을 연출한다. 휴양림내에는 숲속의 집, 야영장, 산림욕장, 야외교실 등 위락 편의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또한 숙박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휴양림에서 21km 정도 떨어진 금산 보리암에 오르면 신라의 명승 원효대사의 자취를 느낄 수 있고, 보리암에서 쌍홍문이라는 바위굴을 통과해서 1시간 정도 돌계단 길을 걸어내려오면 상주해수욕장으로 연결되는 도로변에 다다른다. 이 밖에 서포김만중 유허지, 충렬사 등 문화유적지를 둘러볼 수도 있다.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향으로 산림욕을 즐긴 후 인근해변으로 차를 몰아 남해바다의 절경을 감상하고, 미조항이나 남해대교 부근의 횟집에서 신선한 회를 즐기는 가을여행을 추천해 본다., 장포항은 남해군 창선면 진동리에 속한다. 창선면은 본래 창선도라 불리는 작은 섬이다. 지금은 연륙교 덕분으로 교통이 편리한 섬 아닌 섬이 되었다. 남해군 지족마을과는 1980년에 개통한 창선교로 이어지며, 북동쪽으로는 2003년 삼천포대교와 늑도대교, 창선대교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장포항은 창선도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방파제 길이 약 300m의 작은 항구다. 소형 낚싯배만이 고요한 장포항에 오고 간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항구 주변 갯바위는 잘 알려진 장포항권 낚시 포인트다. 장포항 주변 갯바위에선 감성돔, 볼락, 열기 등이 잘 잡혀 주말이면 낚시꾼을 갯바위 포인트로 날라주는 어선들로 항구는 붐빈다, 항구 주변은 언제나 깨끗한 편인데, 마을 주민들이 관리하기 때문이다. 항구 뒤편 언덕에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곳 옆으로 2km쯤 걸으면 모상개해수욕장에 닿을 수 있다., 지족해협은 하루 두번씩 밤낮으로 12시를 넘으면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할 때마다 바닷물이 좁은 해역을 빠져나가는 물살이 당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다는 이야기다. 창선교는 이같은 지족 해협를 가로질러 창선면 지족리와 삼동면 지족리를 이어준다. 길이 438m, 너비 14.5m의 규모로 95년 12월 20일 개통되었다. 원래 창선교는 1980년 6월 5일 완공되어 사용되어 오다가 1992년 무너져 내려 다시 놓게 된 것이다.

창선교는 교통의 소통 뿐아니라 위에 올라 다리 아래서 진행되는 원시어업 형태의 죽방렴과 일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원시형태의 방법이 그대로 간직된 살아있는 민속문화재인 죽방렴은 길이 10m정도의 참나무로 된 말목을 개펄에 벌려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조류가 흘러오는 방향을 향해 V자형으로 벌려놓고 물살에 떠내려오는 고기를 잡는 단순한 방법으로 현재 남해군 지족해협에 유일하게 23통이 남아있어 보존가치가 높은 관광자원으로 관심을 모은다., 남해대교에서 섬의 한가운데를 향해 4km들어오면 관음포(사적) 이충무공전몰유허가 자리잡고 있다. 일명 ”이락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장군의 유해가 맨처음 육지에 오른곳이다. 이락사 앞 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있다. 이락사가 순국 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장군이 전사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이었다. 이순신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이곳에 나라를 지켰던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사철 푸른 육송이 404년전의 그 날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채 4,50미터의 오솔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 이순신의 8대손인 통제사 이항권(李恒權)이 충무공의 진충보국(盡忠報國)의 뜻을 기리는 유허비(높이 187cm, 폭 75.5cm, 두께 22cm)를 세웠다. 1973년 6월 사적 으로 지정되어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라고 부르게 되었다. 남해대교와 충렬사로 여행하려면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4월 초에서 중순까지가 가장 좋다. 하얗게 핀 벚꽃과 함께 푸른바다를 달려보면 남해만의 색다른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노량마을 선착장에서 관광유람선으로 다도해의 비경을 구경하는 것도 바다를 찾은 또 다른 기쁨. 해방후 1950년에 남해군민 7,000여 명이 자진 헌금하여 정원과 참배도로를 닦았고 1965년에 박정희 전대통령이 이락사(李落祠), 대성운해(大星隕海) 액자를 내렸으며 1973년 4월 사적으로 지정하고 경역을 정화했다.1991년에 첨망대 누각을 세웠으며, 1998년 12월 16일에 이충무공께서 유언한 “지금 싸움이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내용의 한문 유언비를 이락사 앞뜰에 세웠다. 이충무공 순국 400주년이 되는 날, 남해군은 추념식행사로 노량해전을 재연하기도 했다.

* 첨망대(瞻望臺)
한려수도를 따라 유유히 남해노량 앞바다에 이르면 관음포가 바라보이니 이곳이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 7년 전쟁중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신 곳으로 이락산 마지막 지점(500m)에 첨망대를 세워 이충무공이 순국한 지점을 바라볼 수 있게 남해군에서 1990년 2층 건물로 건립하였다. 첨망대에서 바라보면 노량해전의 전장이 한눈에 보인다.

* 대성운해
조국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소나무에도 투영된 것일까? ”이락사” 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서면 바로 ”대성운해”라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린 비각이 있다. ”大星隕海”라.”큰별이 바다에 잠겼다”는 뜻이다. 비각에서 첨망대까지 연결된 솔밭길은 500m에 이른다. 길의 좌우에는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정취를 더한다.,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이어 우리나라에서 네번째 큰섬. 창선· 삼천포대교 개통 이전까지 남해의 관문은 동양 최대의 현수교라 불렸던 남해대교이다. 남해대교는 길이 660m, 높이 52m의 아름다운 현수교로 1973년 개통된지 오래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일컬어지고 있다. 남해대교가 가로지른 노량해협의 거센 물살은 남해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산증인이요, 역사의 마당이었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시작된 곳으로, 또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수한 유배객들이 자신의 적소로 건너오기 위해 나룻배를 탔던 한맺힌 곳이었다. 남해대교가 놓여지기 전, 남해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거나 도선으로 노량의 물살을 가로질러 다녀야 했지만 30년 전부터는 승용차로 1~2분이면 물을 건넌다. 남해를 육지와 연결한 남해대교를 건너면 벚꽃터널이 반긴다. 봄이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 벚꽃의 터널이 장관이다.

코스2 : 원천항

원천항(1)

남해의 가천 다랭이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지만 배 한척 없는 마을이다. 마을이 해안절벽을 끼고 있는 탓이다. 방파제는 고사하고 선착장 하나도 만들 수 없다보니 마을주민들은 척박한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한 층 한 층 석축을 쌓아 만든 다랭이 논(명승 제15호)은 그렇게 태어났다. 가천다랭이마을 체험은 남해인의 억척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다랭이 논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들쭉날쭉 제 멋대로 생긴 논들이지만 그 사이사이로 산뜻한 산책로와 전망대가 마련돼 있어 편안히 돌아볼 수 있다. 다랭이의 명물인 암수바위(경남민속자료 제13호)와 밥무덤, 구름다리, 몽돌해변 등을 돌아보는 데 1시간 남짓 시간이 소요된다. 마을을 돌아보는 동안 안내를 맡은 마을주민에게서 마을 유래에 얽힌 재미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다., 지방어항으로 지정된 원천항은 남해군 대표 관광지인 금산 자락 아래 위치한 항구이다. 남해바래길 본선 10코스 앵강다숲길의 시작점으로 길 항내 원천 방파제는 유명한 낚시 포인트 중 하나이다. 파도치는 소리가 앵무새 소리와 닮았다고 하여 ”앵강만”이라고 불리는 만곡진 바다를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항구이다. 주변 명소로는 남해 가천 다랭이 논과 금산 보리암 등이 있으며 항구에는 횟집과 멸치쌈밥을 맛볼 수 있는 맛집이 두루 있다., 소금강 또는 남해금강이라 불리는 삼남 제일의 명산. 금산(704m)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온통 기암괴석들로 뒤덮인 38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신라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를 짓고 보광산이라 불러왔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 이 산에서 백일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되자 영세불망의 영산이라 하여 온 산을 비단으로 두른다는 뜻으로 금산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정상에는 강화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이 있으며, 불타오르는 여명이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는 금산의 일출은 3년동안 덕을 쌓아 볼수 있다하며 그 장엄함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가져다 준다.

[출처 : 남해 문화관광],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은 이름 그대로 남해바다 인근 한려해상국립공원 북단에 위치하며, 편백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멀리있는 벗을 찾아가듯 넉넉한 마음으로 차를 몰아 남쪽으로 내려가면 남해와 육지를 연결하는 남해대교에 다다른다. 남해대교를 건너 19번 국도를 계속 타고 가다가 남해읍 이동면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2.5km 정도 가면 삼동주유소 앞 삼거리. 여기에서 우회전해 4km달리면 봉화삼거리가 나오고 “”남해편백자연휴양림” 이정표를 따라 7km 더 가면 휴양림에 도착하게 된다.

지난 1998년 개장한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의 면적은 227만㎡, 1일 수용인원은 최대 1,000명, 최적 400명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 북쪽 해발 681m 의 금산 동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산림욕과 함께 남해바다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휴양림 입구를 지나 편백나무 숲 속에서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전망대에 이르는데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크고 작은 섬들과 금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전망을 연출한다. 휴양림내에는 숲속의 집, 야영장, 산림욕장, 야외교실 등 위락 편의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또한 숙박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휴양림에서 21km 정도 떨어진 금산 보리암에 오르면 신라의 명승 원효대사의 자취를 느낄 수 있고, 보리암에서 쌍홍문이라는 바위굴을 통과해서 1시간 정도 돌계단 길을 걸어내려오면 상주해수욕장으로 연결되는 도로변에 다다른다. 이 밖에 서포김만중 유허지, 충렬사 등 문화유적지를 둘러볼 수도 있다.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향으로 산림욕을 즐긴 후 인근해변으로 차를 몰아 남해바다의 절경을 감상하고, 미조항이나 남해대교 부근의 횟집에서 신선한 회를 즐기는 가을여행을 추천해 본다., 장포항은 남해군 창선면 진동리에 속한다. 창선면은 본래 창선도라 불리는 작은 섬이다. 지금은 연륙교 덕분으로 교통이 편리한 섬 아닌 섬이 되었다. 남해군 지족마을과는 1980년에 개통한 창선교로 이어지며, 북동쪽으로는 2003년 삼천포대교와 늑도대교, 창선대교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장포항은 창선도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방파제 길이 약 300m의 작은 항구다. 소형 낚싯배만이 고요한 장포항에 오고 간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항구 주변 갯바위는 잘 알려진 장포항권 낚시 포인트다. 장포항 주변 갯바위에선 감성돔, 볼락, 열기 등이 잘 잡혀 주말이면 낚시꾼을 갯바위 포인트로 날라주는 어선들로 항구는 붐빈다, 항구 주변은 언제나 깨끗한 편인데, 마을 주민들이 관리하기 때문이다. 항구 뒤편 언덕에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곳 옆으로 2km쯤 걸으면 모상개해수욕장에 닿을 수 있다., 지족해협은 하루 두번씩 밤낮으로 12시를 넘으면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할 때마다 바닷물이 좁은 해역을 빠져나가는 물살이 당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다는 이야기다. 창선교는 이같은 지족 해협를 가로질러 창선면 지족리와 삼동면 지족리를 이어준다. 길이 438m, 너비 14.5m의 규모로 95년 12월 20일 개통되었다. 원래 창선교는 1980년 6월 5일 완공되어 사용되어 오다가 1992년 무너져 내려 다시 놓게 된 것이다.

창선교는 교통의 소통 뿐아니라 위에 올라 다리 아래서 진행되는 원시어업 형태의 죽방렴과 일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원시형태의 방법이 그대로 간직된 살아있는 민속문화재인 죽방렴은 길이 10m정도의 참나무로 된 말목을 개펄에 벌려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조류가 흘러오는 방향을 향해 V자형으로 벌려놓고 물살에 떠내려오는 고기를 잡는 단순한 방법으로 현재 남해군 지족해협에 유일하게 23통이 남아있어 보존가치가 높은 관광자원으로 관심을 모은다., 남해대교에서 섬의 한가운데를 향해 4km들어오면 관음포(사적) 이충무공전몰유허가 자리잡고 있다. 일명 ”이락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장군의 유해가 맨처음 육지에 오른곳이다. 이락사 앞 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있다. 이락사가 순국 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장군이 전사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이었다. 이순신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이곳에 나라를 지켰던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사철 푸른 육송이 404년전의 그 날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채 4,50미터의 오솔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 이순신의 8대손인 통제사 이항권(李恒權)이 충무공의 진충보국(盡忠報國)의 뜻을 기리는 유허비(높이 187cm, 폭 75.5cm, 두께 22cm)를 세웠다. 1973년 6월 사적 으로 지정되어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라고 부르게 되었다. 남해대교와 충렬사로 여행하려면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4월 초에서 중순까지가 가장 좋다. 하얗게 핀 벚꽃과 함께 푸른바다를 달려보면 남해만의 색다른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노량마을 선착장에서 관광유람선으로 다도해의 비경을 구경하는 것도 바다를 찾은 또 다른 기쁨. 해방후 1950년에 남해군민 7,000여 명이 자진 헌금하여 정원과 참배도로를 닦았고 1965년에 박정희 전대통령이 이락사(李落祠), 대성운해(大星隕海) 액자를 내렸으며 1973년 4월 사적으로 지정하고 경역을 정화했다.1991년에 첨망대 누각을 세웠으며, 1998년 12월 16일에 이충무공께서 유언한 “지금 싸움이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내용의 한문 유언비를 이락사 앞뜰에 세웠다. 이충무공 순국 400주년이 되는 날, 남해군은 추념식행사로 노량해전을 재연하기도 했다.

* 첨망대(瞻望臺)
한려수도를 따라 유유히 남해노량 앞바다에 이르면 관음포가 바라보이니 이곳이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 7년 전쟁중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신 곳으로 이락산 마지막 지점(500m)에 첨망대를 세워 이충무공이 순국한 지점을 바라볼 수 있게 남해군에서 1990년 2층 건물로 건립하였다. 첨망대에서 바라보면 노량해전의 전장이 한눈에 보인다.

* 대성운해
조국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소나무에도 투영된 것일까? ”이락사” 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서면 바로 ”대성운해”라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린 비각이 있다. ”大星隕海”라.”큰별이 바다에 잠겼다”는 뜻이다. 비각에서 첨망대까지 연결된 솔밭길은 500m에 이른다. 길의 좌우에는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정취를 더한다.,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이어 우리나라에서 네번째 큰섬. 창선· 삼천포대교 개통 이전까지 남해의 관문은 동양 최대의 현수교라 불렸던 남해대교이다. 남해대교는 길이 660m, 높이 52m의 아름다운 현수교로 1973년 개통된지 오래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일컬어지고 있다. 남해대교가 가로지른 노량해협의 거센 물살은 남해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산증인이요, 역사의 마당이었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시작된 곳으로, 또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수한 유배객들이 자신의 적소로 건너오기 위해 나룻배를 탔던 한맺힌 곳이었다. 남해대교가 놓여지기 전, 남해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거나 도선으로 노량의 물살을 가로질러 다녀야 했지만 30년 전부터는 승용차로 1~2분이면 물을 건넌다. 남해를 육지와 연결한 남해대교를 건너면 벚꽃터널이 반긴다. 봄이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 벚꽃의 터널이 장관이다.

코스3 : 금산 보리암(남해)

금산 보리암_01

남해의 가천 다랭이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지만 배 한척 없는 마을이다. 마을이 해안절벽을 끼고 있는 탓이다. 방파제는 고사하고 선착장 하나도 만들 수 없다보니 마을주민들은 척박한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한 층 한 층 석축을 쌓아 만든 다랭이 논(명승 제15호)은 그렇게 태어났다. 가천다랭이마을 체험은 남해인의 억척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다랭이 논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들쭉날쭉 제 멋대로 생긴 논들이지만 그 사이사이로 산뜻한 산책로와 전망대가 마련돼 있어 편안히 돌아볼 수 있다. 다랭이의 명물인 암수바위(경남민속자료 제13호)와 밥무덤, 구름다리, 몽돌해변 등을 돌아보는 데 1시간 남짓 시간이 소요된다. 마을을 돌아보는 동안 안내를 맡은 마을주민에게서 마을 유래에 얽힌 재미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다., 지방어항으로 지정된 원천항은 남해군 대표 관광지인 금산 자락 아래 위치한 항구이다. 남해바래길 본선 10코스 앵강다숲길의 시작점으로 길 항내 원천 방파제는 유명한 낚시 포인트 중 하나이다. 파도치는 소리가 앵무새 소리와 닮았다고 하여 ”앵강만”이라고 불리는 만곡진 바다를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항구이다. 주변 명소로는 남해 가천 다랭이 논과 금산 보리암 등이 있으며 항구에는 횟집과 멸치쌈밥을 맛볼 수 있는 맛집이 두루 있다., 소금강 또는 남해금강이라 불리는 삼남 제일의 명산. 금산(704m)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온통 기암괴석들로 뒤덮인 38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신라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를 짓고 보광산이라 불러왔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 이 산에서 백일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되자 영세불망의 영산이라 하여 온 산을 비단으로 두른다는 뜻으로 금산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정상에는 강화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이 있으며, 불타오르는 여명이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는 금산의 일출은 3년동안 덕을 쌓아 볼수 있다하며 그 장엄함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가져다 준다.

[출처 : 남해 문화관광],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은 이름 그대로 남해바다 인근 한려해상국립공원 북단에 위치하며, 편백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멀리있는 벗을 찾아가듯 넉넉한 마음으로 차를 몰아 남쪽으로 내려가면 남해와 육지를 연결하는 남해대교에 다다른다. 남해대교를 건너 19번 국도를 계속 타고 가다가 남해읍 이동면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2.5km 정도 가면 삼동주유소 앞 삼거리. 여기에서 우회전해 4km달리면 봉화삼거리가 나오고 “”남해편백자연휴양림” 이정표를 따라 7km 더 가면 휴양림에 도착하게 된다.

지난 1998년 개장한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의 면적은 227만㎡, 1일 수용인원은 최대 1,000명, 최적 400명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 북쪽 해발 681m 의 금산 동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산림욕과 함께 남해바다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휴양림 입구를 지나 편백나무 숲 속에서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전망대에 이르는데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크고 작은 섬들과 금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전망을 연출한다. 휴양림내에는 숲속의 집, 야영장, 산림욕장, 야외교실 등 위락 편의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또한 숙박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휴양림에서 21km 정도 떨어진 금산 보리암에 오르면 신라의 명승 원효대사의 자취를 느낄 수 있고, 보리암에서 쌍홍문이라는 바위굴을 통과해서 1시간 정도 돌계단 길을 걸어내려오면 상주해수욕장으로 연결되는 도로변에 다다른다. 이 밖에 서포김만중 유허지, 충렬사 등 문화유적지를 둘러볼 수도 있다.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향으로 산림욕을 즐긴 후 인근해변으로 차를 몰아 남해바다의 절경을 감상하고, 미조항이나 남해대교 부근의 횟집에서 신선한 회를 즐기는 가을여행을 추천해 본다., 장포항은 남해군 창선면 진동리에 속한다. 창선면은 본래 창선도라 불리는 작은 섬이다. 지금은 연륙교 덕분으로 교통이 편리한 섬 아닌 섬이 되었다. 남해군 지족마을과는 1980년에 개통한 창선교로 이어지며, 북동쪽으로는 2003년 삼천포대교와 늑도대교, 창선대교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장포항은 창선도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방파제 길이 약 300m의 작은 항구다. 소형 낚싯배만이 고요한 장포항에 오고 간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항구 주변 갯바위는 잘 알려진 장포항권 낚시 포인트다. 장포항 주변 갯바위에선 감성돔, 볼락, 열기 등이 잘 잡혀 주말이면 낚시꾼을 갯바위 포인트로 날라주는 어선들로 항구는 붐빈다, 항구 주변은 언제나 깨끗한 편인데, 마을 주민들이 관리하기 때문이다. 항구 뒤편 언덕에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곳 옆으로 2km쯤 걸으면 모상개해수욕장에 닿을 수 있다., 지족해협은 하루 두번씩 밤낮으로 12시를 넘으면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할 때마다 바닷물이 좁은 해역을 빠져나가는 물살이 당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다는 이야기다. 창선교는 이같은 지족 해협를 가로질러 창선면 지족리와 삼동면 지족리를 이어준다. 길이 438m, 너비 14.5m의 규모로 95년 12월 20일 개통되었다. 원래 창선교는 1980년 6월 5일 완공되어 사용되어 오다가 1992년 무너져 내려 다시 놓게 된 것이다.

창선교는 교통의 소통 뿐아니라 위에 올라 다리 아래서 진행되는 원시어업 형태의 죽방렴과 일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원시형태의 방법이 그대로 간직된 살아있는 민속문화재인 죽방렴은 길이 10m정도의 참나무로 된 말목을 개펄에 벌려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조류가 흘러오는 방향을 향해 V자형으로 벌려놓고 물살에 떠내려오는 고기를 잡는 단순한 방법으로 현재 남해군 지족해협에 유일하게 23통이 남아있어 보존가치가 높은 관광자원으로 관심을 모은다., 남해대교에서 섬의 한가운데를 향해 4km들어오면 관음포(사적) 이충무공전몰유허가 자리잡고 있다. 일명 ”이락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장군의 유해가 맨처음 육지에 오른곳이다. 이락사 앞 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있다. 이락사가 순국 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장군이 전사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이었다. 이순신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이곳에 나라를 지켰던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사철 푸른 육송이 404년전의 그 날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채 4,50미터의 오솔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 이순신의 8대손인 통제사 이항권(李恒權)이 충무공의 진충보국(盡忠報國)의 뜻을 기리는 유허비(높이 187cm, 폭 75.5cm, 두께 22cm)를 세웠다. 1973년 6월 사적 으로 지정되어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라고 부르게 되었다. 남해대교와 충렬사로 여행하려면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4월 초에서 중순까지가 가장 좋다. 하얗게 핀 벚꽃과 함께 푸른바다를 달려보면 남해만의 색다른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노량마을 선착장에서 관광유람선으로 다도해의 비경을 구경하는 것도 바다를 찾은 또 다른 기쁨. 해방후 1950년에 남해군민 7,000여 명이 자진 헌금하여 정원과 참배도로를 닦았고 1965년에 박정희 전대통령이 이락사(李落祠), 대성운해(大星隕海) 액자를 내렸으며 1973년 4월 사적으로 지정하고 경역을 정화했다.1991년에 첨망대 누각을 세웠으며, 1998년 12월 16일에 이충무공께서 유언한 “지금 싸움이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내용의 한문 유언비를 이락사 앞뜰에 세웠다. 이충무공 순국 400주년이 되는 날, 남해군은 추념식행사로 노량해전을 재연하기도 했다.

* 첨망대(瞻望臺)
한려수도를 따라 유유히 남해노량 앞바다에 이르면 관음포가 바라보이니 이곳이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 7년 전쟁중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신 곳으로 이락산 마지막 지점(500m)에 첨망대를 세워 이충무공이 순국한 지점을 바라볼 수 있게 남해군에서 1990년 2층 건물로 건립하였다. 첨망대에서 바라보면 노량해전의 전장이 한눈에 보인다.

* 대성운해
조국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소나무에도 투영된 것일까? ”이락사” 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서면 바로 ”대성운해”라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린 비각이 있다. ”大星隕海”라.”큰별이 바다에 잠겼다”는 뜻이다. 비각에서 첨망대까지 연결된 솔밭길은 500m에 이른다. 길의 좌우에는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정취를 더한다.,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이어 우리나라에서 네번째 큰섬. 창선· 삼천포대교 개통 이전까지 남해의 관문은 동양 최대의 현수교라 불렸던 남해대교이다. 남해대교는 길이 660m, 높이 52m의 아름다운 현수교로 1973년 개통된지 오래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일컬어지고 있다. 남해대교가 가로지른 노량해협의 거센 물살은 남해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산증인이요, 역사의 마당이었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시작된 곳으로, 또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수한 유배객들이 자신의 적소로 건너오기 위해 나룻배를 탔던 한맺힌 곳이었다. 남해대교가 놓여지기 전, 남해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거나 도선으로 노량의 물살을 가로질러 다녀야 했지만 30년 전부터는 승용차로 1~2분이면 물을 건넌다. 남해를 육지와 연결한 남해대교를 건너면 벚꽃터널이 반긴다. 봄이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 벚꽃의 터널이 장관이다.

코스4 : 국립 남해편백자연휴양림

남해편백자연휴양림_메인

남해의 가천 다랭이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지만 배 한척 없는 마을이다. 마을이 해안절벽을 끼고 있는 탓이다. 방파제는 고사하고 선착장 하나도 만들 수 없다보니 마을주민들은 척박한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한 층 한 층 석축을 쌓아 만든 다랭이 논(명승 제15호)은 그렇게 태어났다. 가천다랭이마을 체험은 남해인의 억척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다랭이 논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들쭉날쭉 제 멋대로 생긴 논들이지만 그 사이사이로 산뜻한 산책로와 전망대가 마련돼 있어 편안히 돌아볼 수 있다. 다랭이의 명물인 암수바위(경남민속자료 제13호)와 밥무덤, 구름다리, 몽돌해변 등을 돌아보는 데 1시간 남짓 시간이 소요된다. 마을을 돌아보는 동안 안내를 맡은 마을주민에게서 마을 유래에 얽힌 재미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다., 지방어항으로 지정된 원천항은 남해군 대표 관광지인 금산 자락 아래 위치한 항구이다. 남해바래길 본선 10코스 앵강다숲길의 시작점으로 길 항내 원천 방파제는 유명한 낚시 포인트 중 하나이다. 파도치는 소리가 앵무새 소리와 닮았다고 하여 ”앵강만”이라고 불리는 만곡진 바다를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항구이다. 주변 명소로는 남해 가천 다랭이 논과 금산 보리암 등이 있으며 항구에는 횟집과 멸치쌈밥을 맛볼 수 있는 맛집이 두루 있다., 소금강 또는 남해금강이라 불리는 삼남 제일의 명산. 금산(704m)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온통 기암괴석들로 뒤덮인 38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신라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를 짓고 보광산이라 불러왔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 이 산에서 백일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되자 영세불망의 영산이라 하여 온 산을 비단으로 두른다는 뜻으로 금산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정상에는 강화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이 있으며, 불타오르는 여명이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는 금산의 일출은 3년동안 덕을 쌓아 볼수 있다하며 그 장엄함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가져다 준다.

[출처 : 남해 문화관광],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은 이름 그대로 남해바다 인근 한려해상국립공원 북단에 위치하며, 편백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멀리있는 벗을 찾아가듯 넉넉한 마음으로 차를 몰아 남쪽으로 내려가면 남해와 육지를 연결하는 남해대교에 다다른다. 남해대교를 건너 19번 국도를 계속 타고 가다가 남해읍 이동면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2.5km 정도 가면 삼동주유소 앞 삼거리. 여기에서 우회전해 4km달리면 봉화삼거리가 나오고 “”남해편백자연휴양림” 이정표를 따라 7km 더 가면 휴양림에 도착하게 된다.

지난 1998년 개장한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의 면적은 227만㎡, 1일 수용인원은 최대 1,000명, 최적 400명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 북쪽 해발 681m 의 금산 동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산림욕과 함께 남해바다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휴양림 입구를 지나 편백나무 숲 속에서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전망대에 이르는데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크고 작은 섬들과 금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전망을 연출한다. 휴양림내에는 숲속의 집, 야영장, 산림욕장, 야외교실 등 위락 편의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또한 숙박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휴양림에서 21km 정도 떨어진 금산 보리암에 오르면 신라의 명승 원효대사의 자취를 느낄 수 있고, 보리암에서 쌍홍문이라는 바위굴을 통과해서 1시간 정도 돌계단 길을 걸어내려오면 상주해수욕장으로 연결되는 도로변에 다다른다. 이 밖에 서포김만중 유허지, 충렬사 등 문화유적지를 둘러볼 수도 있다.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향으로 산림욕을 즐긴 후 인근해변으로 차를 몰아 남해바다의 절경을 감상하고, 미조항이나 남해대교 부근의 횟집에서 신선한 회를 즐기는 가을여행을 추천해 본다., 장포항은 남해군 창선면 진동리에 속한다. 창선면은 본래 창선도라 불리는 작은 섬이다. 지금은 연륙교 덕분으로 교통이 편리한 섬 아닌 섬이 되었다. 남해군 지족마을과는 1980년에 개통한 창선교로 이어지며, 북동쪽으로는 2003년 삼천포대교와 늑도대교, 창선대교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장포항은 창선도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방파제 길이 약 300m의 작은 항구다. 소형 낚싯배만이 고요한 장포항에 오고 간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항구 주변 갯바위는 잘 알려진 장포항권 낚시 포인트다. 장포항 주변 갯바위에선 감성돔, 볼락, 열기 등이 잘 잡혀 주말이면 낚시꾼을 갯바위 포인트로 날라주는 어선들로 항구는 붐빈다, 항구 주변은 언제나 깨끗한 편인데, 마을 주민들이 관리하기 때문이다. 항구 뒤편 언덕에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곳 옆으로 2km쯤 걸으면 모상개해수욕장에 닿을 수 있다., 지족해협은 하루 두번씩 밤낮으로 12시를 넘으면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할 때마다 바닷물이 좁은 해역을 빠져나가는 물살이 당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다는 이야기다. 창선교는 이같은 지족 해협를 가로질러 창선면 지족리와 삼동면 지족리를 이어준다. 길이 438m, 너비 14.5m의 규모로 95년 12월 20일 개통되었다. 원래 창선교는 1980년 6월 5일 완공되어 사용되어 오다가 1992년 무너져 내려 다시 놓게 된 것이다.

창선교는 교통의 소통 뿐아니라 위에 올라 다리 아래서 진행되는 원시어업 형태의 죽방렴과 일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원시형태의 방법이 그대로 간직된 살아있는 민속문화재인 죽방렴은 길이 10m정도의 참나무로 된 말목을 개펄에 벌려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조류가 흘러오는 방향을 향해 V자형으로 벌려놓고 물살에 떠내려오는 고기를 잡는 단순한 방법으로 현재 남해군 지족해협에 유일하게 23통이 남아있어 보존가치가 높은 관광자원으로 관심을 모은다., 남해대교에서 섬의 한가운데를 향해 4km들어오면 관음포(사적) 이충무공전몰유허가 자리잡고 있다. 일명 ”이락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장군의 유해가 맨처음 육지에 오른곳이다. 이락사 앞 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있다. 이락사가 순국 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장군이 전사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이었다. 이순신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이곳에 나라를 지켰던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사철 푸른 육송이 404년전의 그 날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채 4,50미터의 오솔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 이순신의 8대손인 통제사 이항권(李恒權)이 충무공의 진충보국(盡忠報國)의 뜻을 기리는 유허비(높이 187cm, 폭 75.5cm, 두께 22cm)를 세웠다. 1973년 6월 사적 으로 지정되어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라고 부르게 되었다. 남해대교와 충렬사로 여행하려면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4월 초에서 중순까지가 가장 좋다. 하얗게 핀 벚꽃과 함께 푸른바다를 달려보면 남해만의 색다른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노량마을 선착장에서 관광유람선으로 다도해의 비경을 구경하는 것도 바다를 찾은 또 다른 기쁨. 해방후 1950년에 남해군민 7,000여 명이 자진 헌금하여 정원과 참배도로를 닦았고 1965년에 박정희 전대통령이 이락사(李落祠), 대성운해(大星隕海) 액자를 내렸으며 1973년 4월 사적으로 지정하고 경역을 정화했다.1991년에 첨망대 누각을 세웠으며, 1998년 12월 16일에 이충무공께서 유언한 “지금 싸움이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내용의 한문 유언비를 이락사 앞뜰에 세웠다. 이충무공 순국 400주년이 되는 날, 남해군은 추념식행사로 노량해전을 재연하기도 했다.

* 첨망대(瞻望臺)
한려수도를 따라 유유히 남해노량 앞바다에 이르면 관음포가 바라보이니 이곳이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 7년 전쟁중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신 곳으로 이락산 마지막 지점(500m)에 첨망대를 세워 이충무공이 순국한 지점을 바라볼 수 있게 남해군에서 1990년 2층 건물로 건립하였다. 첨망대에서 바라보면 노량해전의 전장이 한눈에 보인다.

* 대성운해
조국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소나무에도 투영된 것일까? ”이락사” 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서면 바로 ”대성운해”라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린 비각이 있다. ”大星隕海”라.”큰별이 바다에 잠겼다”는 뜻이다. 비각에서 첨망대까지 연결된 솔밭길은 500m에 이른다. 길의 좌우에는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정취를 더한다.,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이어 우리나라에서 네번째 큰섬. 창선· 삼천포대교 개통 이전까지 남해의 관문은 동양 최대의 현수교라 불렸던 남해대교이다. 남해대교는 길이 660m, 높이 52m의 아름다운 현수교로 1973년 개통된지 오래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일컬어지고 있다. 남해대교가 가로지른 노량해협의 거센 물살은 남해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산증인이요, 역사의 마당이었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시작된 곳으로, 또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수한 유배객들이 자신의 적소로 건너오기 위해 나룻배를 탔던 한맺힌 곳이었다. 남해대교가 놓여지기 전, 남해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거나 도선으로 노량의 물살을 가로질러 다녀야 했지만 30년 전부터는 승용차로 1~2분이면 물을 건넌다. 남해를 육지와 연결한 남해대교를 건너면 벚꽃터널이 반긴다. 봄이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 벚꽃의 터널이 장관이다.

코스5 : 장포항

경남_남해_장포항_염관식 01

남해의 가천 다랭이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지만 배 한척 없는 마을이다. 마을이 해안절벽을 끼고 있는 탓이다. 방파제는 고사하고 선착장 하나도 만들 수 없다보니 마을주민들은 척박한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한 층 한 층 석축을 쌓아 만든 다랭이 논(명승 제15호)은 그렇게 태어났다. 가천다랭이마을 체험은 남해인의 억척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다랭이 논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들쭉날쭉 제 멋대로 생긴 논들이지만 그 사이사이로 산뜻한 산책로와 전망대가 마련돼 있어 편안히 돌아볼 수 있다. 다랭이의 명물인 암수바위(경남민속자료 제13호)와 밥무덤, 구름다리, 몽돌해변 등을 돌아보는 데 1시간 남짓 시간이 소요된다. 마을을 돌아보는 동안 안내를 맡은 마을주민에게서 마을 유래에 얽힌 재미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다., 지방어항으로 지정된 원천항은 남해군 대표 관광지인 금산 자락 아래 위치한 항구이다. 남해바래길 본선 10코스 앵강다숲길의 시작점으로 길 항내 원천 방파제는 유명한 낚시 포인트 중 하나이다. 파도치는 소리가 앵무새 소리와 닮았다고 하여 ”앵강만”이라고 불리는 만곡진 바다를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항구이다. 주변 명소로는 남해 가천 다랭이 논과 금산 보리암 등이 있으며 항구에는 횟집과 멸치쌈밥을 맛볼 수 있는 맛집이 두루 있다., 소금강 또는 남해금강이라 불리는 삼남 제일의 명산. 금산(704m)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온통 기암괴석들로 뒤덮인 38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신라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를 짓고 보광산이라 불러왔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 이 산에서 백일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되자 영세불망의 영산이라 하여 온 산을 비단으로 두른다는 뜻으로 금산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정상에는 강화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이 있으며, 불타오르는 여명이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는 금산의 일출은 3년동안 덕을 쌓아 볼수 있다하며 그 장엄함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가져다 준다.

[출처 : 남해 문화관광],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은 이름 그대로 남해바다 인근 한려해상국립공원 북단에 위치하며, 편백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멀리있는 벗을 찾아가듯 넉넉한 마음으로 차를 몰아 남쪽으로 내려가면 남해와 육지를 연결하는 남해대교에 다다른다. 남해대교를 건너 19번 국도를 계속 타고 가다가 남해읍 이동면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2.5km 정도 가면 삼동주유소 앞 삼거리. 여기에서 우회전해 4km달리면 봉화삼거리가 나오고 “”남해편백자연휴양림” 이정표를 따라 7km 더 가면 휴양림에 도착하게 된다.

지난 1998년 개장한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의 면적은 227만㎡, 1일 수용인원은 최대 1,000명, 최적 400명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 북쪽 해발 681m 의 금산 동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산림욕과 함께 남해바다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휴양림 입구를 지나 편백나무 숲 속에서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전망대에 이르는데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크고 작은 섬들과 금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전망을 연출한다. 휴양림내에는 숲속의 집, 야영장, 산림욕장, 야외교실 등 위락 편의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또한 숙박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휴양림에서 21km 정도 떨어진 금산 보리암에 오르면 신라의 명승 원효대사의 자취를 느낄 수 있고, 보리암에서 쌍홍문이라는 바위굴을 통과해서 1시간 정도 돌계단 길을 걸어내려오면 상주해수욕장으로 연결되는 도로변에 다다른다. 이 밖에 서포김만중 유허지, 충렬사 등 문화유적지를 둘러볼 수도 있다.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향으로 산림욕을 즐긴 후 인근해변으로 차를 몰아 남해바다의 절경을 감상하고, 미조항이나 남해대교 부근의 횟집에서 신선한 회를 즐기는 가을여행을 추천해 본다., 장포항은 남해군 창선면 진동리에 속한다. 창선면은 본래 창선도라 불리는 작은 섬이다. 지금은 연륙교 덕분으로 교통이 편리한 섬 아닌 섬이 되었다. 남해군 지족마을과는 1980년에 개통한 창선교로 이어지며, 북동쪽으로는 2003년 삼천포대교와 늑도대교, 창선대교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장포항은 창선도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방파제 길이 약 300m의 작은 항구다. 소형 낚싯배만이 고요한 장포항에 오고 간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항구 주변 갯바위는 잘 알려진 장포항권 낚시 포인트다. 장포항 주변 갯바위에선 감성돔, 볼락, 열기 등이 잘 잡혀 주말이면 낚시꾼을 갯바위 포인트로 날라주는 어선들로 항구는 붐빈다, 항구 주변은 언제나 깨끗한 편인데, 마을 주민들이 관리하기 때문이다. 항구 뒤편 언덕에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곳 옆으로 2km쯤 걸으면 모상개해수욕장에 닿을 수 있다., 지족해협은 하루 두번씩 밤낮으로 12시를 넘으면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할 때마다 바닷물이 좁은 해역을 빠져나가는 물살이 당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다는 이야기다. 창선교는 이같은 지족 해협를 가로질러 창선면 지족리와 삼동면 지족리를 이어준다. 길이 438m, 너비 14.5m의 규모로 95년 12월 20일 개통되었다. 원래 창선교는 1980년 6월 5일 완공되어 사용되어 오다가 1992년 무너져 내려 다시 놓게 된 것이다.

창선교는 교통의 소통 뿐아니라 위에 올라 다리 아래서 진행되는 원시어업 형태의 죽방렴과 일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원시형태의 방법이 그대로 간직된 살아있는 민속문화재인 죽방렴은 길이 10m정도의 참나무로 된 말목을 개펄에 벌려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조류가 흘러오는 방향을 향해 V자형으로 벌려놓고 물살에 떠내려오는 고기를 잡는 단순한 방법으로 현재 남해군 지족해협에 유일하게 23통이 남아있어 보존가치가 높은 관광자원으로 관심을 모은다., 남해대교에서 섬의 한가운데를 향해 4km들어오면 관음포(사적) 이충무공전몰유허가 자리잡고 있다. 일명 ”이락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장군의 유해가 맨처음 육지에 오른곳이다. 이락사 앞 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있다. 이락사가 순국 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장군이 전사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이었다. 이순신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이곳에 나라를 지켰던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사철 푸른 육송이 404년전의 그 날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채 4,50미터의 오솔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 이순신의 8대손인 통제사 이항권(李恒權)이 충무공의 진충보국(盡忠報國)의 뜻을 기리는 유허비(높이 187cm, 폭 75.5cm, 두께 22cm)를 세웠다. 1973년 6월 사적 으로 지정되어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라고 부르게 되었다. 남해대교와 충렬사로 여행하려면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4월 초에서 중순까지가 가장 좋다. 하얗게 핀 벚꽃과 함께 푸른바다를 달려보면 남해만의 색다른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노량마을 선착장에서 관광유람선으로 다도해의 비경을 구경하는 것도 바다를 찾은 또 다른 기쁨. 해방후 1950년에 남해군민 7,000여 명이 자진 헌금하여 정원과 참배도로를 닦았고 1965년에 박정희 전대통령이 이락사(李落祠), 대성운해(大星隕海) 액자를 내렸으며 1973년 4월 사적으로 지정하고 경역을 정화했다.1991년에 첨망대 누각을 세웠으며, 1998년 12월 16일에 이충무공께서 유언한 “지금 싸움이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내용의 한문 유언비를 이락사 앞뜰에 세웠다. 이충무공 순국 400주년이 되는 날, 남해군은 추념식행사로 노량해전을 재연하기도 했다.

* 첨망대(瞻望臺)
한려수도를 따라 유유히 남해노량 앞바다에 이르면 관음포가 바라보이니 이곳이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 7년 전쟁중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신 곳으로 이락산 마지막 지점(500m)에 첨망대를 세워 이충무공이 순국한 지점을 바라볼 수 있게 남해군에서 1990년 2층 건물로 건립하였다. 첨망대에서 바라보면 노량해전의 전장이 한눈에 보인다.

* 대성운해
조국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소나무에도 투영된 것일까? ”이락사” 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서면 바로 ”대성운해”라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린 비각이 있다. ”大星隕海”라.”큰별이 바다에 잠겼다”는 뜻이다. 비각에서 첨망대까지 연결된 솔밭길은 500m에 이른다. 길의 좌우에는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정취를 더한다.,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이어 우리나라에서 네번째 큰섬. 창선· 삼천포대교 개통 이전까지 남해의 관문은 동양 최대의 현수교라 불렸던 남해대교이다. 남해대교는 길이 660m, 높이 52m의 아름다운 현수교로 1973년 개통된지 오래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일컬어지고 있다. 남해대교가 가로지른 노량해협의 거센 물살은 남해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산증인이요, 역사의 마당이었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시작된 곳으로, 또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수한 유배객들이 자신의 적소로 건너오기 위해 나룻배를 탔던 한맺힌 곳이었다. 남해대교가 놓여지기 전, 남해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거나 도선으로 노량의 물살을 가로질러 다녀야 했지만 30년 전부터는 승용차로 1~2분이면 물을 건넌다. 남해를 육지와 연결한 남해대교를 건너면 벚꽃터널이 반긴다. 봄이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 벚꽃의 터널이 장관이다.

코스6 : 창선교와 원시어업 죽방렴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

남해의 가천 다랭이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지만 배 한척 없는 마을이다. 마을이 해안절벽을 끼고 있는 탓이다. 방파제는 고사하고 선착장 하나도 만들 수 없다보니 마을주민들은 척박한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한 층 한 층 석축을 쌓아 만든 다랭이 논(명승 제15호)은 그렇게 태어났다. 가천다랭이마을 체험은 남해인의 억척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다랭이 논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들쭉날쭉 제 멋대로 생긴 논들이지만 그 사이사이로 산뜻한 산책로와 전망대가 마련돼 있어 편안히 돌아볼 수 있다. 다랭이의 명물인 암수바위(경남민속자료 제13호)와 밥무덤, 구름다리, 몽돌해변 등을 돌아보는 데 1시간 남짓 시간이 소요된다. 마을을 돌아보는 동안 안내를 맡은 마을주민에게서 마을 유래에 얽힌 재미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다., 지방어항으로 지정된 원천항은 남해군 대표 관광지인 금산 자락 아래 위치한 항구이다. 남해바래길 본선 10코스 앵강다숲길의 시작점으로 길 항내 원천 방파제는 유명한 낚시 포인트 중 하나이다. 파도치는 소리가 앵무새 소리와 닮았다고 하여 ”앵강만”이라고 불리는 만곡진 바다를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항구이다. 주변 명소로는 남해 가천 다랭이 논과 금산 보리암 등이 있으며 항구에는 횟집과 멸치쌈밥을 맛볼 수 있는 맛집이 두루 있다., 소금강 또는 남해금강이라 불리는 삼남 제일의 명산. 금산(704m)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온통 기암괴석들로 뒤덮인 38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신라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를 짓고 보광산이라 불러왔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 이 산에서 백일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되자 영세불망의 영산이라 하여 온 산을 비단으로 두른다는 뜻으로 금산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정상에는 강화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이 있으며, 불타오르는 여명이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는 금산의 일출은 3년동안 덕을 쌓아 볼수 있다하며 그 장엄함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가져다 준다.

[출처 : 남해 문화관광],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은 이름 그대로 남해바다 인근 한려해상국립공원 북단에 위치하며, 편백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멀리있는 벗을 찾아가듯 넉넉한 마음으로 차를 몰아 남쪽으로 내려가면 남해와 육지를 연결하는 남해대교에 다다른다. 남해대교를 건너 19번 국도를 계속 타고 가다가 남해읍 이동면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2.5km 정도 가면 삼동주유소 앞 삼거리. 여기에서 우회전해 4km달리면 봉화삼거리가 나오고 “”남해편백자연휴양림” 이정표를 따라 7km 더 가면 휴양림에 도착하게 된다.

지난 1998년 개장한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의 면적은 227만㎡, 1일 수용인원은 최대 1,000명, 최적 400명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 북쪽 해발 681m 의 금산 동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산림욕과 함께 남해바다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휴양림 입구를 지나 편백나무 숲 속에서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전망대에 이르는데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크고 작은 섬들과 금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전망을 연출한다. 휴양림내에는 숲속의 집, 야영장, 산림욕장, 야외교실 등 위락 편의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또한 숙박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휴양림에서 21km 정도 떨어진 금산 보리암에 오르면 신라의 명승 원효대사의 자취를 느낄 수 있고, 보리암에서 쌍홍문이라는 바위굴을 통과해서 1시간 정도 돌계단 길을 걸어내려오면 상주해수욕장으로 연결되는 도로변에 다다른다. 이 밖에 서포김만중 유허지, 충렬사 등 문화유적지를 둘러볼 수도 있다.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향으로 산림욕을 즐긴 후 인근해변으로 차를 몰아 남해바다의 절경을 감상하고, 미조항이나 남해대교 부근의 횟집에서 신선한 회를 즐기는 가을여행을 추천해 본다., 장포항은 남해군 창선면 진동리에 속한다. 창선면은 본래 창선도라 불리는 작은 섬이다. 지금은 연륙교 덕분으로 교통이 편리한 섬 아닌 섬이 되었다. 남해군 지족마을과는 1980년에 개통한 창선교로 이어지며, 북동쪽으로는 2003년 삼천포대교와 늑도대교, 창선대교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장포항은 창선도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방파제 길이 약 300m의 작은 항구다. 소형 낚싯배만이 고요한 장포항에 오고 간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항구 주변 갯바위는 잘 알려진 장포항권 낚시 포인트다. 장포항 주변 갯바위에선 감성돔, 볼락, 열기 등이 잘 잡혀 주말이면 낚시꾼을 갯바위 포인트로 날라주는 어선들로 항구는 붐빈다, 항구 주변은 언제나 깨끗한 편인데, 마을 주민들이 관리하기 때문이다. 항구 뒤편 언덕에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곳 옆으로 2km쯤 걸으면 모상개해수욕장에 닿을 수 있다., 지족해협은 하루 두번씩 밤낮으로 12시를 넘으면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할 때마다 바닷물이 좁은 해역을 빠져나가는 물살이 당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다는 이야기다. 창선교는 이같은 지족 해협를 가로질러 창선면 지족리와 삼동면 지족리를 이어준다. 길이 438m, 너비 14.5m의 규모로 95년 12월 20일 개통되었다. 원래 창선교는 1980년 6월 5일 완공되어 사용되어 오다가 1992년 무너져 내려 다시 놓게 된 것이다.

창선교는 교통의 소통 뿐아니라 위에 올라 다리 아래서 진행되는 원시어업 형태의 죽방렴과 일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원시형태의 방법이 그대로 간직된 살아있는 민속문화재인 죽방렴은 길이 10m정도의 참나무로 된 말목을 개펄에 벌려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조류가 흘러오는 방향을 향해 V자형으로 벌려놓고 물살에 떠내려오는 고기를 잡는 단순한 방법으로 현재 남해군 지족해협에 유일하게 23통이 남아있어 보존가치가 높은 관광자원으로 관심을 모은다., 남해대교에서 섬의 한가운데를 향해 4km들어오면 관음포(사적) 이충무공전몰유허가 자리잡고 있다. 일명 ”이락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장군의 유해가 맨처음 육지에 오른곳이다. 이락사 앞 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있다. 이락사가 순국 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장군이 전사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이었다. 이순신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이곳에 나라를 지켰던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사철 푸른 육송이 404년전의 그 날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채 4,50미터의 오솔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 이순신의 8대손인 통제사 이항권(李恒權)이 충무공의 진충보국(盡忠報國)의 뜻을 기리는 유허비(높이 187cm, 폭 75.5cm, 두께 22cm)를 세웠다. 1973년 6월 사적 으로 지정되어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라고 부르게 되었다. 남해대교와 충렬사로 여행하려면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4월 초에서 중순까지가 가장 좋다. 하얗게 핀 벚꽃과 함께 푸른바다를 달려보면 남해만의 색다른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노량마을 선착장에서 관광유람선으로 다도해의 비경을 구경하는 것도 바다를 찾은 또 다른 기쁨. 해방후 1950년에 남해군민 7,000여 명이 자진 헌금하여 정원과 참배도로를 닦았고 1965년에 박정희 전대통령이 이락사(李落祠), 대성운해(大星隕海) 액자를 내렸으며 1973년 4월 사적으로 지정하고 경역을 정화했다.1991년에 첨망대 누각을 세웠으며, 1998년 12월 16일에 이충무공께서 유언한 “지금 싸움이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내용의 한문 유언비를 이락사 앞뜰에 세웠다. 이충무공 순국 400주년이 되는 날, 남해군은 추념식행사로 노량해전을 재연하기도 했다.

* 첨망대(瞻望臺)
한려수도를 따라 유유히 남해노량 앞바다에 이르면 관음포가 바라보이니 이곳이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 7년 전쟁중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신 곳으로 이락산 마지막 지점(500m)에 첨망대를 세워 이충무공이 순국한 지점을 바라볼 수 있게 남해군에서 1990년 2층 건물로 건립하였다. 첨망대에서 바라보면 노량해전의 전장이 한눈에 보인다.

* 대성운해
조국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소나무에도 투영된 것일까? ”이락사” 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서면 바로 ”대성운해”라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린 비각이 있다. ”大星隕海”라.”큰별이 바다에 잠겼다”는 뜻이다. 비각에서 첨망대까지 연결된 솔밭길은 500m에 이른다. 길의 좌우에는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정취를 더한다.,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이어 우리나라에서 네번째 큰섬. 창선· 삼천포대교 개통 이전까지 남해의 관문은 동양 최대의 현수교라 불렸던 남해대교이다. 남해대교는 길이 660m, 높이 52m의 아름다운 현수교로 1973년 개통된지 오래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일컬어지고 있다. 남해대교가 가로지른 노량해협의 거센 물살은 남해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산증인이요, 역사의 마당이었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시작된 곳으로, 또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수한 유배객들이 자신의 적소로 건너오기 위해 나룻배를 탔던 한맺힌 곳이었다. 남해대교가 놓여지기 전, 남해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거나 도선으로 노량의 물살을 가로질러 다녀야 했지만 30년 전부터는 승용차로 1~2분이면 물을 건넌다. 남해를 육지와 연결한 남해대교를 건너면 벚꽃터널이 반긴다. 봄이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 벚꽃의 터널이 장관이다.

코스7 :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_메인

남해의 가천 다랭이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지만 배 한척 없는 마을이다. 마을이 해안절벽을 끼고 있는 탓이다. 방파제는 고사하고 선착장 하나도 만들 수 없다보니 마을주민들은 척박한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한 층 한 층 석축을 쌓아 만든 다랭이 논(명승 제15호)은 그렇게 태어났다. 가천다랭이마을 체험은 남해인의 억척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다랭이 논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들쭉날쭉 제 멋대로 생긴 논들이지만 그 사이사이로 산뜻한 산책로와 전망대가 마련돼 있어 편안히 돌아볼 수 있다. 다랭이의 명물인 암수바위(경남민속자료 제13호)와 밥무덤, 구름다리, 몽돌해변 등을 돌아보는 데 1시간 남짓 시간이 소요된다. 마을을 돌아보는 동안 안내를 맡은 마을주민에게서 마을 유래에 얽힌 재미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다., 지방어항으로 지정된 원천항은 남해군 대표 관광지인 금산 자락 아래 위치한 항구이다. 남해바래길 본선 10코스 앵강다숲길의 시작점으로 길 항내 원천 방파제는 유명한 낚시 포인트 중 하나이다. 파도치는 소리가 앵무새 소리와 닮았다고 하여 ”앵강만”이라고 불리는 만곡진 바다를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항구이다. 주변 명소로는 남해 가천 다랭이 논과 금산 보리암 등이 있으며 항구에는 횟집과 멸치쌈밥을 맛볼 수 있는 맛집이 두루 있다., 소금강 또는 남해금강이라 불리는 삼남 제일의 명산. 금산(704m)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온통 기암괴석들로 뒤덮인 38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신라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를 짓고 보광산이라 불러왔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 이 산에서 백일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되자 영세불망의 영산이라 하여 온 산을 비단으로 두른다는 뜻으로 금산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정상에는 강화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이 있으며, 불타오르는 여명이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는 금산의 일출은 3년동안 덕을 쌓아 볼수 있다하며 그 장엄함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가져다 준다.

[출처 : 남해 문화관광],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은 이름 그대로 남해바다 인근 한려해상국립공원 북단에 위치하며, 편백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멀리있는 벗을 찾아가듯 넉넉한 마음으로 차를 몰아 남쪽으로 내려가면 남해와 육지를 연결하는 남해대교에 다다른다. 남해대교를 건너 19번 국도를 계속 타고 가다가 남해읍 이동면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2.5km 정도 가면 삼동주유소 앞 삼거리. 여기에서 우회전해 4km달리면 봉화삼거리가 나오고 “”남해편백자연휴양림” 이정표를 따라 7km 더 가면 휴양림에 도착하게 된다.

지난 1998년 개장한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의 면적은 227만㎡, 1일 수용인원은 최대 1,000명, 최적 400명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 북쪽 해발 681m 의 금산 동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산림욕과 함께 남해바다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휴양림 입구를 지나 편백나무 숲 속에서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전망대에 이르는데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크고 작은 섬들과 금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전망을 연출한다. 휴양림내에는 숲속의 집, 야영장, 산림욕장, 야외교실 등 위락 편의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또한 숙박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휴양림에서 21km 정도 떨어진 금산 보리암에 오르면 신라의 명승 원효대사의 자취를 느낄 수 있고, 보리암에서 쌍홍문이라는 바위굴을 통과해서 1시간 정도 돌계단 길을 걸어내려오면 상주해수욕장으로 연결되는 도로변에 다다른다. 이 밖에 서포김만중 유허지, 충렬사 등 문화유적지를 둘러볼 수도 있다.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향으로 산림욕을 즐긴 후 인근해변으로 차를 몰아 남해바다의 절경을 감상하고, 미조항이나 남해대교 부근의 횟집에서 신선한 회를 즐기는 가을여행을 추천해 본다., 장포항은 남해군 창선면 진동리에 속한다. 창선면은 본래 창선도라 불리는 작은 섬이다. 지금은 연륙교 덕분으로 교통이 편리한 섬 아닌 섬이 되었다. 남해군 지족마을과는 1980년에 개통한 창선교로 이어지며, 북동쪽으로는 2003년 삼천포대교와 늑도대교, 창선대교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장포항은 창선도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방파제 길이 약 300m의 작은 항구다. 소형 낚싯배만이 고요한 장포항에 오고 간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항구 주변 갯바위는 잘 알려진 장포항권 낚시 포인트다. 장포항 주변 갯바위에선 감성돔, 볼락, 열기 등이 잘 잡혀 주말이면 낚시꾼을 갯바위 포인트로 날라주는 어선들로 항구는 붐빈다, 항구 주변은 언제나 깨끗한 편인데, 마을 주민들이 관리하기 때문이다. 항구 뒤편 언덕에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곳 옆으로 2km쯤 걸으면 모상개해수욕장에 닿을 수 있다., 지족해협은 하루 두번씩 밤낮으로 12시를 넘으면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할 때마다 바닷물이 좁은 해역을 빠져나가는 물살이 당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다는 이야기다. 창선교는 이같은 지족 해협를 가로질러 창선면 지족리와 삼동면 지족리를 이어준다. 길이 438m, 너비 14.5m의 규모로 95년 12월 20일 개통되었다. 원래 창선교는 1980년 6월 5일 완공되어 사용되어 오다가 1992년 무너져 내려 다시 놓게 된 것이다.

창선교는 교통의 소통 뿐아니라 위에 올라 다리 아래서 진행되는 원시어업 형태의 죽방렴과 일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원시형태의 방법이 그대로 간직된 살아있는 민속문화재인 죽방렴은 길이 10m정도의 참나무로 된 말목을 개펄에 벌려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조류가 흘러오는 방향을 향해 V자형으로 벌려놓고 물살에 떠내려오는 고기를 잡는 단순한 방법으로 현재 남해군 지족해협에 유일하게 23통이 남아있어 보존가치가 높은 관광자원으로 관심을 모은다., 남해대교에서 섬의 한가운데를 향해 4km들어오면 관음포(사적) 이충무공전몰유허가 자리잡고 있다. 일명 ”이락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장군의 유해가 맨처음 육지에 오른곳이다. 이락사 앞 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있다. 이락사가 순국 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장군이 전사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이었다. 이순신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이곳에 나라를 지켰던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사철 푸른 육송이 404년전의 그 날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채 4,50미터의 오솔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 이순신의 8대손인 통제사 이항권(李恒權)이 충무공의 진충보국(盡忠報國)의 뜻을 기리는 유허비(높이 187cm, 폭 75.5cm, 두께 22cm)를 세웠다. 1973년 6월 사적 으로 지정되어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라고 부르게 되었다. 남해대교와 충렬사로 여행하려면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4월 초에서 중순까지가 가장 좋다. 하얗게 핀 벚꽃과 함께 푸른바다를 달려보면 남해만의 색다른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노량마을 선착장에서 관광유람선으로 다도해의 비경을 구경하는 것도 바다를 찾은 또 다른 기쁨. 해방후 1950년에 남해군민 7,000여 명이 자진 헌금하여 정원과 참배도로를 닦았고 1965년에 박정희 전대통령이 이락사(李落祠), 대성운해(大星隕海) 액자를 내렸으며 1973년 4월 사적으로 지정하고 경역을 정화했다.1991년에 첨망대 누각을 세웠으며, 1998년 12월 16일에 이충무공께서 유언한 “지금 싸움이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내용의 한문 유언비를 이락사 앞뜰에 세웠다. 이충무공 순국 400주년이 되는 날, 남해군은 추념식행사로 노량해전을 재연하기도 했다.

* 첨망대(瞻望臺)
한려수도를 따라 유유히 남해노량 앞바다에 이르면 관음포가 바라보이니 이곳이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 7년 전쟁중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신 곳으로 이락산 마지막 지점(500m)에 첨망대를 세워 이충무공이 순국한 지점을 바라볼 수 있게 남해군에서 1990년 2층 건물로 건립하였다. 첨망대에서 바라보면 노량해전의 전장이 한눈에 보인다.

* 대성운해
조국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소나무에도 투영된 것일까? ”이락사” 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서면 바로 ”대성운해”라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린 비각이 있다. ”大星隕海”라.”큰별이 바다에 잠겼다”는 뜻이다. 비각에서 첨망대까지 연결된 솔밭길은 500m에 이른다. 길의 좌우에는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정취를 더한다.,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이어 우리나라에서 네번째 큰섬. 창선· 삼천포대교 개통 이전까지 남해의 관문은 동양 최대의 현수교라 불렸던 남해대교이다. 남해대교는 길이 660m, 높이 52m의 아름다운 현수교로 1973년 개통된지 오래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일컬어지고 있다. 남해대교가 가로지른 노량해협의 거센 물살은 남해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산증인이요, 역사의 마당이었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시작된 곳으로, 또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수한 유배객들이 자신의 적소로 건너오기 위해 나룻배를 탔던 한맺힌 곳이었다. 남해대교가 놓여지기 전, 남해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거나 도선으로 노량의 물살을 가로질러 다녀야 했지만 30년 전부터는 승용차로 1~2분이면 물을 건넌다. 남해를 육지와 연결한 남해대교를 건너면 벚꽃터널이 반긴다. 봄이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 벚꽃의 터널이 장관이다.

코스8 : 남해대교

남해의 가천 다랭이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지만 배 한척 없는 마을이다. 마을이 해안절벽을 끼고 있는 탓이다. 방파제는 고사하고 선착장 하나도 만들 수 없다보니 마을주민들은 척박한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한 층 한 층 석축을 쌓아 만든 다랭이 논(명승 제15호)은 그렇게 태어났다. 가천다랭이마을 체험은 남해인의 억척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다랭이 논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들쭉날쭉 제 멋대로 생긴 논들이지만 그 사이사이로 산뜻한 산책로와 전망대가 마련돼 있어 편안히 돌아볼 수 있다. 다랭이의 명물인 암수바위(경남민속자료 제13호)와 밥무덤, 구름다리, 몽돌해변 등을 돌아보는 데 1시간 남짓 시간이 소요된다. 마을을 돌아보는 동안 안내를 맡은 마을주민에게서 마을 유래에 얽힌 재미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다., 지방어항으로 지정된 원천항은 남해군 대표 관광지인 금산 자락 아래 위치한 항구이다. 남해바래길 본선 10코스 앵강다숲길의 시작점으로 길 항내 원천 방파제는 유명한 낚시 포인트 중 하나이다. 파도치는 소리가 앵무새 소리와 닮았다고 하여 ”앵강만”이라고 불리는 만곡진 바다를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항구이다. 주변 명소로는 남해 가천 다랭이 논과 금산 보리암 등이 있으며 항구에는 횟집과 멸치쌈밥을 맛볼 수 있는 맛집이 두루 있다., 소금강 또는 남해금강이라 불리는 삼남 제일의 명산. 금산(704m)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온통 기암괴석들로 뒤덮인 38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신라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를 짓고 보광산이라 불러왔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 이 산에서 백일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되자 영세불망의 영산이라 하여 온 산을 비단으로 두른다는 뜻으로 금산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정상에는 강화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이 있으며, 불타오르는 여명이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는 금산의 일출은 3년동안 덕을 쌓아 볼수 있다하며 그 장엄함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가져다 준다.

[출처 : 남해 문화관광],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은 이름 그대로 남해바다 인근 한려해상국립공원 북단에 위치하며, 편백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멀리있는 벗을 찾아가듯 넉넉한 마음으로 차를 몰아 남쪽으로 내려가면 남해와 육지를 연결하는 남해대교에 다다른다. 남해대교를 건너 19번 국도를 계속 타고 가다가 남해읍 이동면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2.5km 정도 가면 삼동주유소 앞 삼거리. 여기에서 우회전해 4km달리면 봉화삼거리가 나오고 “”남해편백자연휴양림” 이정표를 따라 7km 더 가면 휴양림에 도착하게 된다.

지난 1998년 개장한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의 면적은 227만㎡, 1일 수용인원은 최대 1,000명, 최적 400명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 북쪽 해발 681m 의 금산 동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산림욕과 함께 남해바다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휴양림 입구를 지나 편백나무 숲 속에서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전망대에 이르는데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크고 작은 섬들과 금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전망을 연출한다. 휴양림내에는 숲속의 집, 야영장, 산림욕장, 야외교실 등 위락 편의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또한 숙박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휴양림에서 21km 정도 떨어진 금산 보리암에 오르면 신라의 명승 원효대사의 자취를 느낄 수 있고, 보리암에서 쌍홍문이라는 바위굴을 통과해서 1시간 정도 돌계단 길을 걸어내려오면 상주해수욕장으로 연결되는 도로변에 다다른다. 이 밖에 서포김만중 유허지, 충렬사 등 문화유적지를 둘러볼 수도 있다.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향으로 산림욕을 즐긴 후 인근해변으로 차를 몰아 남해바다의 절경을 감상하고, 미조항이나 남해대교 부근의 횟집에서 신선한 회를 즐기는 가을여행을 추천해 본다., 장포항은 남해군 창선면 진동리에 속한다. 창선면은 본래 창선도라 불리는 작은 섬이다. 지금은 연륙교 덕분으로 교통이 편리한 섬 아닌 섬이 되었다. 남해군 지족마을과는 1980년에 개통한 창선교로 이어지며, 북동쪽으로는 2003년 삼천포대교와 늑도대교, 창선대교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장포항은 창선도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방파제 길이 약 300m의 작은 항구다. 소형 낚싯배만이 고요한 장포항에 오고 간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항구 주변 갯바위는 잘 알려진 장포항권 낚시 포인트다. 장포항 주변 갯바위에선 감성돔, 볼락, 열기 등이 잘 잡혀 주말이면 낚시꾼을 갯바위 포인트로 날라주는 어선들로 항구는 붐빈다, 항구 주변은 언제나 깨끗한 편인데, 마을 주민들이 관리하기 때문이다. 항구 뒤편 언덕에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곳 옆으로 2km쯤 걸으면 모상개해수욕장에 닿을 수 있다., 지족해협은 하루 두번씩 밤낮으로 12시를 넘으면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할 때마다 바닷물이 좁은 해역을 빠져나가는 물살이 당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다는 이야기다. 창선교는 이같은 지족 해협를 가로질러 창선면 지족리와 삼동면 지족리를 이어준다. 길이 438m, 너비 14.5m의 규모로 95년 12월 20일 개통되었다. 원래 창선교는 1980년 6월 5일 완공되어 사용되어 오다가 1992년 무너져 내려 다시 놓게 된 것이다.

창선교는 교통의 소통 뿐아니라 위에 올라 다리 아래서 진행되는 원시어업 형태의 죽방렴과 일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원시형태의 방법이 그대로 간직된 살아있는 민속문화재인 죽방렴은 길이 10m정도의 참나무로 된 말목을 개펄에 벌려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조류가 흘러오는 방향을 향해 V자형으로 벌려놓고 물살에 떠내려오는 고기를 잡는 단순한 방법으로 현재 남해군 지족해협에 유일하게 23통이 남아있어 보존가치가 높은 관광자원으로 관심을 모은다., 남해대교에서 섬의 한가운데를 향해 4km들어오면 관음포(사적) 이충무공전몰유허가 자리잡고 있다. 일명 ”이락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장군의 유해가 맨처음 육지에 오른곳이다. 이락사 앞 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있다. 이락사가 순국 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장군이 전사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이었다. 이순신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이곳에 나라를 지켰던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사철 푸른 육송이 404년전의 그 날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채 4,50미터의 오솔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 이순신의 8대손인 통제사 이항권(李恒權)이 충무공의 진충보국(盡忠報國)의 뜻을 기리는 유허비(높이 187cm, 폭 75.5cm, 두께 22cm)를 세웠다. 1973년 6월 사적 으로 지정되어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라고 부르게 되었다. 남해대교와 충렬사로 여행하려면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4월 초에서 중순까지가 가장 좋다. 하얗게 핀 벚꽃과 함께 푸른바다를 달려보면 남해만의 색다른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노량마을 선착장에서 관광유람선으로 다도해의 비경을 구경하는 것도 바다를 찾은 또 다른 기쁨. 해방후 1950년에 남해군민 7,000여 명이 자진 헌금하여 정원과 참배도로를 닦았고 1965년에 박정희 전대통령이 이락사(李落祠), 대성운해(大星隕海) 액자를 내렸으며 1973년 4월 사적으로 지정하고 경역을 정화했다.1991년에 첨망대 누각을 세웠으며, 1998년 12월 16일에 이충무공께서 유언한 “지금 싸움이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내용의 한문 유언비를 이락사 앞뜰에 세웠다. 이충무공 순국 400주년이 되는 날, 남해군은 추념식행사로 노량해전을 재연하기도 했다.

* 첨망대(瞻望臺)
한려수도를 따라 유유히 남해노량 앞바다에 이르면 관음포가 바라보이니 이곳이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 7년 전쟁중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신 곳으로 이락산 마지막 지점(500m)에 첨망대를 세워 이충무공이 순국한 지점을 바라볼 수 있게 남해군에서 1990년 2층 건물로 건립하였다. 첨망대에서 바라보면 노량해전의 전장이 한눈에 보인다.

* 대성운해
조국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소나무에도 투영된 것일까? ”이락사” 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서면 바로 ”대성운해”라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린 비각이 있다. ”大星隕海”라.”큰별이 바다에 잠겼다”는 뜻이다. 비각에서 첨망대까지 연결된 솔밭길은 500m에 이른다. 길의 좌우에는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정취를 더한다.,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이어 우리나라에서 네번째 큰섬. 창선· 삼천포대교 개통 이전까지 남해의 관문은 동양 최대의 현수교라 불렸던 남해대교이다. 남해대교는 길이 660m, 높이 52m의 아름다운 현수교로 1973년 개통된지 오래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일컬어지고 있다. 남해대교가 가로지른 노량해협의 거센 물살은 남해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산증인이요, 역사의 마당이었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시작된 곳으로, 또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수한 유배객들이 자신의 적소로 건너오기 위해 나룻배를 탔던 한맺힌 곳이었다. 남해대교가 놓여지기 전, 남해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거나 도선으로 노량의 물살을 가로질러 다녀야 했지만 30년 전부터는 승용차로 1~2분이면 물을 건넌다. 남해를 육지와 연결한 남해대교를 건너면 벚꽃터널이 반긴다. 봄이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 벚꽃의 터널이 장관이다.

남파랑길(남해 구간) 지도 확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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